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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증권, 경제 이야기

콜베르, 태양왕의 절대권력과 천하제일 부강 대국 프랑스를 만든 단 한사람

by luckykorean 2024. 9. 18.

목차

    콜베르, 태양왕의 절대권력과 천하제일 부강 대국 프랑스를 만든 단 한사람

    매일경제에 올라온 뉴스기사입니다.

    그 자체로 너무 멋지고 완벽한 명문이자 너무나 훌륭한 기사라 제가 감히 내용을 요약하거나 손댈 수가 없어 전문을 있는 그대로 퍼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한마디 더 보태거나 빼어 수정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완성된 멋진 글인 것 같습니다.

    신하의 아내들까지 탐한 절대권력...그가 향락에 빠지도록 판 깔아준 이 남자[히코노미]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2024. 9. 7. 07:03

     

    [히코노미-4] 그는 세상의 주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 아름다운 여인들, 진귀한 동식물까지. 모든 것은 그의 소유여야 했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궁전에는 그의 치세를 찬양하는 신하들로 가득합니다. 측근의 부인들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입니다. 지상에 만든 천국에서 그는 신과 다름 없었습니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인 ‘태양왕’ 루이14세의 이야기입니다.

    루이14세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 [사진출처=G CHP]

    경제학의 기본 원칙은 간단합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 루이14세가 본인의 절대권력을 누릴 수 있던 기반에는 나라 곳간을 가득 채운 훌륭한 신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르 그랑 콜베르(Le Grand Colbert)’. 루이 14세의 재무 총감인 ‘위대한 콜베르’였습니다.

     

    루이14세의 프랑스가 향락의 극치를 달리면서도, 유럽의 최강자로 떠오른 배경에는 콜베르의 회계적 지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통하는 베르사유 역시 콜베르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테지요. 이 사내는 어떻게 프랑스를 강대국으로 만든 것이었을까요.

    “우리 프랑스의 위대한 영광을 위하여.” 베르사유에서 의전을 묘사한 장 레옹 제롬의 그림.

    절대왕정의 초라한 시작

    “저는 정치가 너무 무서워요, 어머니.”

     

    오늘날 태양왕이자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통하는 루이14세지만 그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아버지 루이13세는 네살에 불과한 루이14세를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 남겨진 건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는 프랑스. 어머니 안 도트리슈와 재상 마자랭의 섭정기(대리통치), 민중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엄마, 저 왕 안 하면 안 돼요?” 어린 시절의 루이14세. 그는 4세에 즉위해 수 많은 정치적 위기를 겪어야 했다.

    결국 프롱드의 난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왕권 약화를 기회삼아 귀족들이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파리를 봉쇄한 반란군을 피해 루이는 어린 나이부터 피난하러 다녀야만 하는 처지였지요. 어린 루이는 어려서부터 권력의 피비린내를 맡아야 하는 신세였습니다. 프롱드의 난은 가까스로 진압했지만, 루이14세의 마음속에는 큰 결기가 섰습니다. “어떻게든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겠어. 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왕이 아닌 우리 귀족을 위한 프랑스를 만들자.” 프롱드의 난을 묘사한 그림.

    1651년 13살의 루이14세가 ‘친정’을 선언합니다. 나이는 어렸지만 더 이상 어머니 안 도트리슈의 치마폭에 싸여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자랭 재상과 통치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인재를 등용하면서 프랑스가 나아가야 할 길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친정을 선언하노라. ”1655년 프롱드의 난을 진압한 승리자 루이14세. 신으로 묘사된 모습이다.

    콜베르와의 운명적 만남

    “이 남자를 써보시지요.”

     

    마자랭 재상이 루이14세를 알현할 때, 한 남자를 대동합니다. 장바티스트 콜베르라는 이름의 남성. 마자랭의 최측근으로 그에게 정치적·경제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 ‘브레인’이었습니다. 마자랭이 루이14세의 ‘두뇌’였다면, 콜베르에겐 마자랭이라는 조언자가 있었습니다. 루이14세의 국정운영에 콜베르가 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이었지요.

    “제가 나라를 부강하게 해주겠습니다. ” 콜베르 초상화.

    잠깐 콜베르의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콜베르는 프랑스 샹파뉴(영어로 샴페인)의 주도 랭스의 금융가에서 태어났습니다. 무역에 필요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을 가업으로 삼은 집안이었습니다. 10대 중반부터 회계사 교육을 받았을 정도로 그들에게 경제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금융국가인 이탈리아의 은행가 집안 마스크라니가의 리옹 사무실을 그가 첫 직장으로 삼은 이유였습니다. ‘중세의 월스트리트’ 글로벌 금융기업의 지점이라고 해야할까요.

     

    근무하면서 그는 회계의 중요성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문서 처리, 법적 절차, 행정력까지. 그는 당대의 이름난 재무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중세 상인들의 상업 메뉴얼인 아르스 메르카토리아(Ars Mercatoria)를 완전히 체화한 인물이 콜베르였습니다. 회계의 중요성이 무시되던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 콜베르, 회계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네.” 복식부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카 파치올리의 초상화.

    콜베르는 관직의 꿈을 품었습니다.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꿈은 프랑스의 부국. 1639년 그가 육군성에 들어간 계기였습니다. 군대의 병력과 보급품을 모두 정리해 재정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이 특출난 젊은이를 눈여겨 보던 사람. 바로 프랑스의 수뇌부 마자랭 재상이었습니다.

     

    마자랭은 콜베르를 자신의 핵심 인재로 활용합니다. 그에겐 엄청난 재산이 있었지만 관리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콜베르는 지식은 있었으나 재산이 미미했지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부족한 걸 채워줄 수 있었습니다.

    “재산을 이렇게나 늘려 놓다니...기특한지고” 콜베르를 발탁한 쥘 마자랭.

    1658년 마자랭의 재산은 800만 리브르(중세 프랑스의 화폐단위)였지만 콜베르는 3년만에 이를 3500만 리브르로 불려 놓습니다. 마자랭이 콜베르를 루이 14세에게 소개해준 배경이지요. 명재상 마자랭이 죽은 뒤, 루이14세의 옆에는 콜베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귀족이 아닌 회계사가 왕의 측근이 된 건 프랑스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지요.

    콜베르의 프랑스 대개혁

    “프랑스에는 도둑이 너무 많습니다.”

     

    회계사의 눈으로 프랑스의 재정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기본적인 재정 구조부터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매의 눈’ 콜베르는 진단합니다. 프랑스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이를 몰래 빼내 가는 도둑이 많은 것이라고.

     

    큰 도둑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재무대신이었던 니콜라 푸케. 전임 재상인 마자랭과 함께 루이14세를 보필한 인물. 왕실 금고에서 사부작사부작 돈을 빼돌린 덕에 엄청난 부를 쌓아 올릴 수 있었지요. 프롱드의 난으로 프랑스 왕실이 휘청거리고 있을 때 조차 그의 가문은 부유해져만 갔습니다.

    “전하 그 돈은 제가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이옵니다.” 니콜라 푸케 초상화.

    돈 많다고, 눈치가 빠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1661년 8월 니콜라 푸케는 루이 14세를 자신의 성으로 초청해 화려한 연회를 열었습니다. 불꽃놀이, 발레쇼, 진귀한 음식들까지, 왕의 궁전보다 더 큰 스케일에 루이14세는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이때의 질투심으로 베르사유궁을 크게 키웠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왕은 콜베르에게 곁눈질을 보냅니다. “푸케의 뒷조사를 시작하게.”

    보 르 비콩트 성은 니콜라 푸케의 소유로, 왕궁보다 크고 화려하기로 유명했다. 이런 과시적 행태가 그의 실각을 블렀다. [사진 출처=Jerome Galichon]

    파티가 끝나고 한달 뒤, 콜베르가 왕의 총사들을 데리고 한 성에 나타납니다. 푸케의 성인 ‘보 르 비콩트’였습니다. 화려한 축제를 벌였던 그곳이었습니다. 총사들은 왕의 명임을 밝히고, 니콜라 푸케의 성을 수색합니다. 그가 어떻게 프랑스의 국고를 빼돌렸는지 적혀있는 회계장부를 발견합니다. 니콜라 푸케는 더 이상 프랑스의 재무대신이 아닌, 국가 반역자였습니다.

     

    이 압수수색을 이끈 총사가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다르타냥’이었습니다. 다르타냥과 짝을 이룬 콜베르는 이제 무서운 것이 없었습니다. 루이14세는 콜베르를 앞세워 회계를 무기로 정적을 제거했던 셈이지요.

    “푸케, 당장 회계장부를 내놓지 못할까.”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다르타냥 동상.

    국정의 원리에 회계를 도입한 콜베르

    “회계는 국정의 기본이어야 합니다.”

     

    ‘회계사’ 콜베르는 프랑스의 최고 지도자이자 루이14세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국가 전반의 운영에 회계가 반영되어야 한다면서, 국왕에게도 회계의 기본을 교육했습니다. 루이14세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프랑스 재무에 관한 역사적 회고록’도 집필합니다.

    “전하, 회계 공부 시간입니다.” 콜베르 초상화.

    세금을 많이 걷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지키고 운용하는 것도 중요함을 강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과거 프랑스 왕들은 오만한 신하들에게 모두 재정을 맡기는 바람에 결국 ‘암군’으로 전락했다는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어렸을 힘 쎈 귀족들의 반란에 치를 떤 루이14세는 누구보다 콜베르의 말을 경청했지요. 루이14세는 보물로 장식된 회계 원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국가 재정을 살폈습니다.

     

    콜베르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회계 장부를 보고합니다. 루이14세는 그가 보고하는 부기를 이해하고 좋아했지요. 콜베르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프랑스의 군주는 ‘회계의 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이 어떻게 들어오고 흘러가는지를 알아야 국부를 쌓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콜베르와 공부할 시간이군.” 젊은 군주 루이14세.

    콜베르는 명재상이었습니다. 효율적인 세금 제도를 마련해 국가 수입의 기반을 마련한 것도 그였습니다. 관세를 신설하고, 토지세도 현실에 맞게 조정되었습니다. 세금 징수원들에게 정확한 기록을 남길 것도 강조했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임의적 면제는 당연히 폐지됩니다. 니콜라 푸케를 축출한지 5년만에 프랑스의 재정은 흑자를 기록합니다.

     

    부채 이자는 5200만 리브르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중상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리옹에 실크 제조업체를 육성하고, 유럽의 여러 장인들을 프랑스로 불렀습니다.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루이13세 때의 병약한 프랑스는 이제 없었습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도 “콜베르가 국고 세입의 징수와 지출에 질서를 도입했다”고 상찬했을 정도입니다.

    “국가 운영은 자고로 콜베르처럼 해야하네.” 콜베르를 극찬한 애덤 스미스.

    긴축에 지쳐가는 루이14세와 그걸 지켜보는 콜베르

    “언제까지 자린고비로 살아야 한단 말이냐.”

     

    루이14세와 콜베르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부유한 재정 상태임에도 콜베르가 언제나 루이14세의 결정에 어깃장을 놨기 때문입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확장에도, 신흥 강호 네덜란드와의 전쟁에도 콜베르는 회계장부를 들이밀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부국 프랑스를 망쳐놓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돈 그렇게 쓰면 거지꼴을 못 면해요.” 콜베르.

    하늘이 루이14세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었을까요. 아님 저주를 내린 것이었을까요. 1683년 8월, 콜베르가 숨을 거뒀습니다. 신장에서 커다란 돌이 요관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이14세는 그의 죽음을 표면적으로 애달파하면서도, 이제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막을 자가 없다는 생각에 미소 지었습니다.

     

    콜베르에 이어 재무총감의 자리에는 클로드 르 펠레티에가 차지합니다. 콜베르의 오랜 라이벌 집안이었습니다. 권력을 분산시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루이14세의 조치였지요. 콜베르 집안은 신임 재무총감 클로드에게 재무 정보와 관련된 정보를 인계하지 않았습니다.

    콜베르가 루이 14세에게 보낸 서신. 베르사유 궁을 확장하는 것에 적대감을 표현했다.

    클로드는 “콜베르 집안이 어떤 정보도 넘기지 않아 프랑스 재정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을 정도입니다. 회계는 권력이었고, 절대로 양도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지요. 콜베르라는 개인의 죽음은, 프랑스 재정의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지 않는 국가는 모래 위에 지어진 성이었습니다.

    고삐 풀린 말이 되어버린 루이14세

    “짐은 유럽의 지배자가 되고 싶다.”

     

    콜베르라는 고삐가 사라지자, 태양왕의 야심은 더욱 더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부르봉 왕가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점점 성장하는 개신교 국가들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루이14세는 독실한 가톨릭이기 때문이었지요. 퐁텐블로 칙령을 통해 국내 개신교 박해를 공식화하기도 했습니다.

    “콜베르도 없는데 이제 궁전도 짓고, 전쟁도 하고, 돈 좀 쓰고 살자.” 1700년 루이 14세의 초상화.

    네덜란드·영국·합스부르크 제국은 이에 맞서 동맹을 결성합니다. 유럽의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루이14세를 가만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9년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전쟁은 승패 없이 지지부진. 막대한 빚만 남았습니다. 스페인 제국의 황제 카를로스 2세가 후계 없이 죽으면서 이를 둘러싼 전쟁이 또 다시 이어집니다. 결국 부르봉 왕가가 스페인의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지만 치러야 할 비용은 너무나 컸습니다.

    루이 14세 손자 필리프가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로 선포되는 장면. 무수한 전쟁과 빚더미를 안은 끝에 얻은 성취였다.

    프랑스의 국력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개신교 박해로 프랑스를 떠난 사람들이 90만명에 달했습니다. 활발한 경제활동으로 프랑스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콜베르는 생전에 종교 탄압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콜베르의 죽음 이후 프랑스가 경제보다 정치를 우선시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재정적 부담은 결국 프랑스를 무너뜨립니다. 1789년 7월 프랑스 혁명이 터져 부르봉 왕조를 몰락시킵니다. ‘르 그랑 콜베르’가 죽은지 100년이 조금 지난 뒤였습니다.

    “나라의 도둑놈들을 처단하자.” 외젠 들라크루아가 프랑스 대혁명을 모티브로 그린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여전히 유효한 콜베르의 경제학 정신

    오늘날 경제학의 관점에서 ‘콜베르주의’는 조악한 구석이 많습니다.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나친 국가적 개입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외국 수입을 제한하면서 자국 소비자 이익을 해친 것도 단점으로 지적됩니다.

     

    콜베르의 정신은 그럼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튼튼한 국가 재정이 부국의 기본임을 입증해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초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은 열렬히 콜베르를 존경했습니다. “프랑스가 번영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위대한 콜베르’의 능력과 불굴의 노력 덕분이다.”

    “그래, 나도 콜베르처럼 미국을 운영하겠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

    해밀턴 역시 콜베르처럼 중앙집권적인 재무시스템만이 부국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국’ 미국의 기원에 콜베르의 정신이 녹아있던 셈입니다.

     

    2024년 8월 대한민국과 가계 채무가 합계 3000조원을 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저는 콜베르를 떠올렸습니다. 재정의 튼튼함이 부국의 기본이라고 태양왕 앞에서도 설파하는 그의 모습을. 위대한 회계, 방만한 재정의 반대자는 번영의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파리 생 외스타슈 교회에 잠든 콜베르. 그의 죽음은 프랑스의 붕괴와도 같았다. [사진출처 Eric Gaba]

    <네줄요약>

    •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인 루이14세가 향락을 즐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튼튼한 국가 재정이 있었다.
    • 이 국가 재정을 설계한 이가 회계사 콜베르였다.
    • 콜베르는 ‘다르타냥’과 함께 국가 재정을 좀먹는 이들을 적발하고, 세금제도를 개편했다.
    • 콜베르가 사망한지 100년이 조금 지나서 부르봉 왕조는 방만한 국가 운영으로 무너졌다.

    <참고문헌>

    • 제이컵 솔,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메멘토, 2016년
    • 앙드레 모로아, 프랑스사, 김영사, 2016년

    ‘경제’는 맛보기에 어려운 식재료입니다. 채권, 이자, 화폐라는 단어만 들어도 쓴맛이 올라옵니다. 맛있게 즐기려면 ‘역사’라는 양념이 필요합니다. 히스토리와 경제를 결합한 연재물 ‘히코노미’는 먹음직한 요리를 내는 걸 목표로 합니다. 격주로 여러분의 경제 근육을 키워드리겠습니다.

    신하의 아내들까지 탐한 절대권력...그가 향락에 빠지도록 판 깔아준 이 남자[히코노미] - 매일경제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신하의 아내들까지 탐한 절대권력...그가 향락에 빠지도록 판 깔아준 이 남자[히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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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기사를 읽다 이렇게 크게 감동받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두 번 읽고 세 번 읽어도 참으로 깊은 교훈을 주는 글입니다.

    무릇 재정이란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우쭐대거나 방만하면 금세 낯을 바꾸고 돌변하여 무거운 정산서를 들이밀기 마련입니다.

    빚더미에 앉아 망하기 직전이었던 프랑스가 단 몇 년 만에 온 유럽을 호령하는 천하제일 프랑스 왕국으로 거듭나는 데에는 오로지 어린 나이부터 돈 무서운 줄을 깨달아 항상 겸손하고 투명하게 재정을 관리했던 명재상 콜베르의 업적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라의 재정을 착복하던 큰 도둑 니콜라 푸케를 쫓아내고, 부당하게 줄줄 새어나가는 세금 구멍만 틀어막았을 뿐인데 프랑스는 유럽의 최강대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거대하고 막강한 천하무적의 권력을 틀어쥐었던 부르봉 왕가는 단지 콜베르의 죽음 이후 태양왕 루이 14세가 '그간 허리띠를 졸라 매고 부를 쌓았으니, 이제부터는 좀 영화롭게 권세를 누리며 살고 싶다'는 오만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부터 몰락만을 거듭하여 불과 100년 남짓만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결국 프랑스 대혁명 당시 온 민중들이 보는 앞에서 후손 루이 16세의 목을 뎅겅 잘라 내어주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부와 권세가 영원하리라 생각하는 오만은 반드시 최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아무리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사방팔방 천하만방을 다 내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그것은 한낱 손바닥으로 햇빛 가리기, 가래질로 한강 막기일 따름입니다.

    위정자는 철저히 겸손해야 합니다.

    철저히 투명하고 공정해야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철저하게 곳곳을 감사(監査, 단체 규율과 구성원의 행동, 업무에 문제가 있는지를 조사하고 감찰하는 직무)하여 깨끗하고 청렴하게 굴러가는 사회라도, 조금의 틈이라도 보인다면 '나 하나 쯤이야'라는 욕심덩어리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곪게 하고, 결국 조직 전체를 썩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것을 부정(不正, 옳지 못하다), 부패(腐敗, 썩고 무너지다)라고 합니다.

    현재 이전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절대권력의 맛에 취한 대한민국 행정부는 최소한의 상식도 없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고, 혹여 부패하지 않게끔 견제하고 감시하는 국가 최중요 기관인 국회를 해산하고 싶다는, 그야말로 앞으로 대놓고 부패하여 사익만을 추구하겠다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견제할 수 없도록 중요 요직 곳곳에 왜곡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정신나간 늙다리 심복들을 촘촘하게 심어놓고 있지만, 세상 그 어떤 천자(天子)도 하늘의 뜻(天命)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각하, 김건희 영부인 여사님, 지금이라도 마음깊이 뉘우치고 크게 깨달아 욕심을 내려놓고 공정을 회복하여 죄업을 씻으십시오.

    분노한 민중의 죽창이 용와대를 뚫고 들어가 그 부른 배때지를 찢어발기고 그간 욕심껏 쳐드신 국고를 쏟아내게끔 할까봐 두렵습니다.

    부탁입니다.

    제발 겸손하십시오.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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