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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증권, 경제 이야기

조선시대 부자의 대명사, 경주 최부잣집 가문 이야기.jpg

by luckykorean 2024. 3. 10.

목차

    조선시대 부자의 대명사, 경주 최부잣집 가문 이야기.jpg

    조선시대 부자의 대명사, 경주 최부잣집 가문 이야기.jpg
    경추 최씨 가문의 문장. - 출처 : wikipedia

    경주 최씨(慶州 崔氏)의 본관은 경상북도 경주시로, 사로(斯盧) 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의 촌장(村長)이었던 소벌도리(蘇伐都利)를 비조로 삼는 가문입니다.

    • 시조(始祖)와 비조(鼻祖) : 시조는 제일 초대의 선조로써 즉 첫번째 조상이며, 비조는 시조 이전의 선계조상 중 가장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경주 최씨의 중시조 최치원(崔致遠)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의 24세손입니다.

    조선시대 부자의 대명사, 경주 최부잣집 가문 이야기.jpg
    경주 최부자는 12대 400년 동안 부와 명예를 이어오면서 한국적 자본주의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동서양을 통해 수많은 부자들이 있었지만 경주 최부자처럼 오랜기간 변함없이 주위의 존경을 받아 온 경우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현한 경주 최부자의 참부자 정신은 21세기 시대정신으로 부각되고 있다. 경주시에서는 최부자 정신의 창조적 계승을 통해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경주 최부자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 출처 : 한국일보
    경주 최부잣집은 무려 4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선을 대표하는 부자가문으로 엄청난 재력을 가졌다고 알려졌죠
    경주 최부잣집은 무려 4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선을 대표하는 부자가문으로 엄청난 재력을 가졌다고 알려졌죠.
    최부잣집의 시조인 최진립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참전해 세운 공을 인정받아
    최부잣집의 시조인 최진립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참전해 세운 공을 인정받아
    공조 참판과 삼도수군통제사 등의 관직을 지내며 부를 쌓게 됩니다.
    공조 참판과 삼도수군통제사 등의 관직을 지내며 부를 쌓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셋째 아들인 최동량에게 물려줬는데
    그는 자신의 재산을 셋째 아들인 최동량에게 물려줬는데
    최동량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을 사들인 후
    최동량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을 사들인 후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들을 모집하고는 소작료로 수확한 곡식의 절반만을 받았죠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들을 모집하고는 소작료로 수확한 곡식의 절반만을 받았죠.
    그러자 수많은 일꾼들이 그의 땅에서 농사를 짓겠다며 몰려들었고
    그러자 수많은 일꾼들이 그의 땅에서 농사를 짓겠다며 몰려들었고
    최동량은 그들에게 거름을 쓰는 시비법과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짓게 하면서 수확량을 크게 늘리는데 성공을 하게 됩니다
    최동량은 그들에게 거름을 쓰는 시비법과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짓게 하면서 수확량을 크게 늘리는데 성공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중간관리자인 '마름'을 두지 않으면서 마름이 중간에서 소작료를 빼돌릴 가능성까지 없애버린 탓에
    게다가 중간관리자인 '마름'을 두지 않으면서 마름이 중간에서 소작료를 빼돌릴 가능성까지 없애버린 탓에
    최동량은 조선최고의 부자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게 되죠.
    최동량은 조선최고의 부자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게 되죠.
    최부잣집이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선행을 베풀기 시작한 것은 3대인 '최국선' 때부터였는데요
    최부잣집이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선행을 베풀기 시작한 것은 3대인 '최국선' 때부터였는데요.
    최국선은 1671년 조선 현종 때에 큰 흉년이 들면서
    최국선은 1671년 조선 현종 때에 큰 흉년이 들면서
    농민들이 자신에게 빌려간 쌀을 갚지도 못할 정도로 힘든 형편이라는 것을 알고는
    농민들이 자신에게 빌려간 쌀을 갚지도 못할 정도로 힘든 형편이라는 것을 알고는
    안타까워하며 그들에게 받은 담보문서를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안타까워하며 그들에게 받은 담보문서를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창고에 있던 쌀을 꺼내 죽을 쑤어서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으며
    뿐만 아니라 창고에 있던 쌀을 꺼내 죽을 쑤어서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으며
    보릿고개인 3월과 4월에는 무려 100석이나 되는 쌀을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죠
    보릿고개인 3월과 4월에는 무려 100석이나 되는 쌀을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죠.
    이후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만들어
    이후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만들어
    소작료로 받은 수입의 3분의 1을 빈민구제로 쓰는 풍습을 200년 후인 최준의 대에까지 계속해서 이어갔다고 합니다.
    소작료로 받은 수입의 3분의 1을 빈민구제로 쓰는 풍습을 200년 후인 최준의 대에까지 계속해서 이어갔다고 합니다.
    때문에 최부잣집은 그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예로 여겨지고 있죠.

    경주 최부잣집에 전해지는 가훈, 여섯가지 행동지침 육훈(六訓)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2.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로 환원하라.
    3.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5.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6.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12대손이자 마지막 최부자로 유명한 '최준'은
    12대손이자 마지막 최부자로 유명한 '최준'은
    일제가 조선을 침탈해 오자 백산 '안희제'와 함께 백산상회를 설립해 독립운동가들에게 거액의 독립자금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일제가 조선을 침탈해 오자 백산 '안희제'와 함께 백산상회를 설립해 독립운동가들에게 거액의 독립자금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임시정부의 활동자금 중 육 할이 넘는 엄청난 자금을 바로 백산상회가 됐다고 하네요.
    임시정부의 활동자금 중 육 할(60%)이 넘는 엄청난 자금을 바로 백산상회가 됐다고 하네요.
    최준은 광복 이후 일제에 빼앗겼던 재산의 3분의 1을 돌려받았는데
    최준은 광복 이후 일제에 빼앗겼던 재산의 3분의 1을 돌려받았는데
    그 돈마저 경북종합대학을 짓는데 모두 기부하면서 나라를 위한 인재를 기르는데 힘썼다고 하죠.
    그 돈마저 경북종합대학을 짓는데 모두 기부하면서 나라를 위한 인재를 기르는데 힘썼다고 하죠.
    그는 죽은 후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됩니다.
    그는 죽은 후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됩니다.

    마음 속에 측은지심을 굳게 세우고 자신의 삶 속에서 남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을 올곧게 지켜나간 위대한 인물은 쉽사리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씨 가문은 수세기에 걸쳐 쌓은 거대한 부를 항상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선택해왔기에 대대손손 자비로운 명문가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유튜브 사건탐구 과거탐구 최부잣댁 이야기 원본 영상

    조선시대 전국적으로 유명했었던 부자 4인방 사건탐구 과거탐구 STGT

    존경받을만한 부자의 귀감, 최부잣댁 이야기 인터넷 커뮤니티 네티즌들의 댓글 반응

    저 최부자집이 당시 6.25때 북한군한테 노략질 당할 때 마을주민들 포함 전체 경북 주민들이 나서서 북한군 대좌새키 만나서 이집은 건드는 게 아니다. 라고 했다 고 하던데?
    지금 후손들 잘 살면 좋겠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재물을 많이 가진다 한들 죽으면 그 재산들 중 동전 한닢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경전 성경(經典, Bible)에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문구가 나옵니다.
    그만큼 부를 축적하여 재물 맛을 본 사람은 남에게 베푸는 것 보다 재물을 긁어모으는 행위 그 자체에 집착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거나 둘러살피지 못하고 악행을 저지르기 쉽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지만 수백년동안 몇 대에 걸쳐 베풀고 나누며 살도록 교육받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한 최부잣댁 사람들은 죽어서도 칭송받으며 만인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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